졸업식에서 야유받은 AI
한국에서 AI는 대체로 '국가전략'이라는 산뜻한 이름표를 달고 있다. 하지만 정작 AI 종주국인 미국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뉴욕 대형 회계법인들이 AI 도입 이후 주니어 회계사들을 대거 내보냈고, 올해 대학 졸업식에서는 초청 연사가 AI를 언급하자마자 야유가 터져 연설이 중단되는 일도 있었다. 인디애나주에서는 데이터센터를 겨냥한 반대 메모가 발견된 사건까지 벌어졌고, 여론조사에서는 미국인 10명 중 7명이 자기 동네에 데이터센터 들어서는 걸 반기지 않는다는 결과도 나왔다.
정치권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AI의 본질은 인간 노동력 대체"라며 데이터센터 건설을 멈추자는 법안을 냈고,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은 청문회에서 조지아주 데이터센터 인근의 변색된 물을 보여주며 환경 문제를 제기했다. 로 칸나 의원은 AI 시대 일자리 정책과 함께 AI 기업 정치자금의 영향력을 제한하는 법안을,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AI가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는 행정명령을 내놨다.
월마트가 찾은 다른 답
이런 살얼음판 위에서 눈에 띄는 사례가 하나 있다. 유통공룡 월마트다. 아마존과의 경쟁 속에서 2014년 취임한 CEO 더그 맥밀런은 '직원'을 회사의 핵심 가치로 못박고, 기술 도입을 인력 감축이 아니라 재교육의 기회로 삼았다. 창고 자동화 라인도 현장 직원들과 함께 설계했다. 그 결과 지게차로 물건을 나르던 직원이 수십 개 공급업체의 데이터를 다루는 관리자로 성장하는 사례가 나왔다.
210만 명의 직원을 둔 월마트는 AI를 감원 도구가 아니라 현장 조력자로 배치하면서 오히려 신규 채용을 이어갔고, 최근에는 스스로를 IT 기업이라 선언하며 나스닥으로 상장 시장까지 옮겼다. 국내에서도 이 흐름에 주목해 서울대에서 열린 한 포럼은 지자체 단위의 사람 중심 AI 정책안을 논의했다.
사람을 남기는 AI
2024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다론 아제모을루 교수는 이 개념을 '친노동 AI(Pro-worker AI)'라 정리했다. AI가 사람을 밀어내는 대신, 사람의 판단력과 역량을 키우는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남의 나라 얘기만은 아니다. 데이터센터와 AI 인프라가 빠르게 들어서는 지금, 고용 충격에 대한 준비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시간 싸움이 됐다.
AI가 사람을 대체할지, 도울지는 결국 '설계'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