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록이 두꺼워진 이유
작년 7월, 이사의 충실의무를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이 시행됐다. 쉽게 말해 이사가 회사뿐 아니라 주주 전체의 이익까지 더 무겁게 고려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로부터 1년, 대한상공회의소가 상장사 300곳을 조사해보니 84.3%가 "이사회 운영 방식이 달라졌다"고 답했다.
변화는 주로 '더 꼼꼼해지는 쪽'으로 나타났다. 법무·준법팀 검토 절차를 새로 만들거나 강화했다는 곳이 47.0%로 가장 많았고, 외부 전문가 자문을 늘렸다는 응답도 45.7%였다. 의사록을 상세히 쓰고, 안건을 미리 배포해 검토 시간을 늘린 곳도 적지 않았다. 한마디로 이사회가 '일단 서류부터 꼼꼼히'로 바뀐 셈이다.
투명해진 만큼, 느려지기도 했다
이런 변화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도 갈렸다. 39.6%는 "책임성과 투명성이 높아졌다"고 긍정적으로 봤지만, 22.4%는 "법적 준수 비용이 늘고 의사결정이 늦어졌다"고 답했다. 실제로 절반 넘는 기업(53.7%)이 주주대표소송이나 손해배상청구 같은 소송 부담을 크게 느낀다고 했고, 21.7%는 법적 검토가 강화되면서 주요 의사결정이 미뤄지거나 취소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특히 신사업이나 인수합병처럼 리스크가 큰 투자 건일수록 이런 지연이 잦았다(30.8%).
기업들이 바라는 건 '더 엄격한 규제'가 아니라 '더 명확한 기준'이다. 조사에서는 이사 충실의무에 대한 구체적 가이드라인 마련(37.3%), 경영판단 원칙의 명문화(20.3%), 실무자 대상 법률 교육 지원(12.7%)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새 제도가 자리 잡으려면 기업의 노력만큼이나 현장에 맞는 세부 지침이 뒤따라야 한다는 목소리다.
투명성은 챙겼지만 속도는 조금 늦어진 이사회, 이제는 '기준'이 필요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