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은 귀로 하는 일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부스 안에서 헤드폰 쓰고 들리는 대로 옮기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알아보니 그게 아니더군요. 통역사는 발표 자료를 눈으로도 확인한다고 합니다.

WPMS는 발표자 노트와 타이머, 지금 띄워진 화면을 태블릿 여러 대에 한꺼번에 뿌려 주는 프로그램입니다. 확인해보니 그 태블릿 중 한 대를 통역 부스 안에 넣는 것도 가능하더군요. 앱을 깔 필요도 없고 인터넷도 안 씁니다. 공유기로 만든 내부망 안에서만 도는 방식인 셈입니다. (설치할 때 정품 인증 1회만 인터넷에 연결하면, 그 뒤 발표 진행에는 필요 없습니다)
소리만으로는 부족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발표 자료에는 도표가 나오고, 그 분야에서만 쓰는 용어가 갑자기 튀어나옵니다. 소리로만 들으면 그게 어떤 숫자인지, 어느 표기의 용어인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화면을 같이 보면 그 확신이 생긴다고 합니다. 반대로 부스 안에서 지금 무슨 장면이 떠 있는지 모르는 채로 옮기면, 통역의 정확도부터 흔들린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인데, 부스 안에 화면 한 장 넣는 게 그동안 왜 어려운 일이었나 싶었습니다.
부스에 띄울 수 있는 건 두 가지
라이브 화면을 그대로 보내거나, 슬라이드 이미지를 띄우거나. 둘 중에 고르면 됩니다.

| 부스에 띄우는 것 | 이럴 때 고릅니다 |
|---|---|
| 발표 화면 라이브 | 발표자가 지금 짚고 있는 지점까지 따라가야 할 때 |
| 슬라이드 이미지 | 지연 없이 또렷한 화면이 필요할 때 |
무선이 미덥지 않은 자리라면 멈춘 그림 한 장만 부스에 넣어 줘도 통역이 훨씬 수월해진다고 합니다. 무리해서 라이브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는 뜻입니다. 이건 알아두면 현장에서 꽤 쓸모 있는 판단 기준 같았습니다.
이미지 쪽이 왜 그렇게 든든한지도 물어봤습니다. 슬라이드를 미리 그림으로 바꿔 두는 방식이라 오갈 데이터가 거의 없고, 그래서 화면이 밀리거나 늦게 뜨는 일이 없다는 겁니다. 애니메이션이 붙은 장면도 항목이 처음부터 전부 보이는 상태로 저장된다고 해서, 내용이 잘려 나갈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통역사가 봐야 하는 건 움직임이 아니라 거기 적힌 숫자와 단어니까, 멈춘 그림으로도 아쉬울 게 없어 보였습니다.
라이브로 가다가 중간에 흔들려도 방법이 있습니다. 관리자 쪽에서 그 태블릿 한 대만 이미지로 바꿔 주면 된다고 합니다. 부스 하나 때문에 행사 전체 설정을 건드릴 필요가 없는 셈입니다.
다음 순서를 미리 아는 쪽이 유리합니다
부스 화면을 진행석과 같이 묶어두면, 무대에 떠 있는 장면은 물론이고 뒤이어 올 순서까지 부스에서 먼저 보게 된다고 합니다. 통역사 입장에서는 다음에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알고 준비하는 것과 그냥 맞닥뜨리는 것의 차이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재미있는 건 태블릿들이 전부 같은 주소로 들어간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뜨는 화면은 자리마다 다릅니다. 관리자 쪽에서 이 기기엔 노트, 저 기기엔 라이브, 그 옆엔 타이머 하는 식으로 하나씩 골라 주는 구조라고 합니다. 통역 부스가 원하는 화면과 사회자석이 원하는 화면이 같을 리 없으니, 결국 이 부분이 핵심이겠구나 싶었습니다.
부스가 여러 개면 이름부터 붙입니다
국제 행사는 언어별로 부스가 여러 개 생깁니다. 이때 태블릿이 죄다 똑같이 생겨서 어느 게 어느 부스 건지 헷갈릴 수 있는데, 기기마다 이름을 지정해두면 이 문제가 사라진다고 합니다.
이름은 태블릿 쪽 설정 화면에서 직접 넣습니다. 기기를 내려놓는 김에 한 줄 적어 두면 끝나는 정도라, 따로 시간을 뺄 일도 아니었습니다.

이름을 붙여두면 관리자 쪽에서 "이 부스엔 이미지, 저 부스엔 라이브" 하는 식으로 각각 다르게 지정할 수 있습니다. 통역 부스뿐 아니라 수어 통역처럼 역할이 다른 자리에도 같은 방식이 쓰인다고 하네요.
궁금해서 더 물어본 것들
Q. 부스가 네 곳이어도 되나요?
노트북 한 대, 공유기 한 대, 그리고 태블릿만 있으면 규모와 상관없이 적용된다고 합니다. 부스가 늘어난다고 장비를 더 들이는 구조는 아닌 셈입니다.
Q. 태블릿이 많아지면 버거워지지 않나요?
노트나 그림처럼 멈춰 있는 화면은 오가는 양이 워낙 적어서 수십 대까지도 무리가 없다고 합니다. 신경 쓸 건 움직이는 라이브 쪽 대수 하나뿐인 셈입니다. 부스 태블릿을 이미지로 돌려 두는 선택이 통역사한테만 좋은 게 아니라 전체 운영에도 여유를 준다는 이야기로 들렸습니다.
Q. 통역 부스에는 결국 뭘 보여주는 건가요?
발표 화면 라이브 아니면 슬라이드 이미지, 이 둘 중 하나입니다. 표에 적힌 숫자와 낯선 용어를 통역사가 직접 눈에 담고 말을 옮기게 하는 것, 그게 목적이라고 보면 됩니다.
정리하면
준비물은 노트북 한 대, 공유기 한 대, 그리고 태블릿입니다. 부스가 두 개든 네 개든 구성 자체는 달라지지 않는 셈입니다. 통역사에게 화면을 보여주는 일이 큰 장비를 새로 들이는 일이 아니라 태블릿 한 대 놓는 일이었다는 게, 알아보면서 제일 의외였던 부분입니다.
굳이 하나 챙길 게 있다면 리허설이었습니다. 슬라이드를 그림으로 바꿔 두는 것도, 태블릿에 이름을 적어 두는 것도 미리 해 두면 끝나는 일인데, 행사 당일 아침에 몰아서 하려 들면 그때부터 정신이 없어진다는 겁니다. 통역은 귀로만 하는 일인 줄 알았던 사람 입장에서는, 화면 한 장을 부스에 넣어 주는 준비가 이 정도로 간단하다는 게 오히려 더 놀라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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