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롬을 다 빼니 오히려 시선이 갔다
보통 '스페셜 에디션'이라고 하면 색을 바꾸거나 장식을 더하기 마련인데, GV80 쿠페 블랙은 정반대의 방식을 택했다. 크롬 장식, 반짝이는 포인트를 걷어내고 그릴·엠블럼·도어 손잡이·휠·머플러 장식까지 전부 검은색으로 통일한 것. 신기하게도 화려함을 뺐더니 차체가 하나의 덩어리처럼 뭉쳐 보이면서 존재감은 더 세졌다. 밤에는 이 효과가 극대화된다. 차체 윤곽은 어둠에 스며들고 두 줄로 이어지는 헤드램프와 리어램프만 선명하게 남는데, 이게 GV80 쿠페 블랙의 '얼굴'이 되는 순간이다.
같은 검은색이라도 다 같은 검은색이 아니라는 것도 포인트. 유광과 무광, 펄이 섞인 표면이 빛을 받을 때마다 다른 명암을 만들어내서, 멀리서는 하나의 검은 실루엣이지만 가까이 가면 소재별로 표정이 다르다. 실내로 들어가도 이 기조는 그대로 이어진다. 가죽, 애쉬우드, 금속, 유광 조작계가 저마다 다른 질감으로 '올블랙'이라는 단어에 깊이를 더한다.
조용할 땐 얌전, 밟으면 415마력
외관만큼 인상적인 건 주행 감각의 낙차다. 3.5리터 터보에 48V 일렉트릭 슈퍼차저를 얹은 이 파워트레인은 평소엔 크게 티를 내지 않는다. 가속페달을 살짝만 건드려도 반응은 즉각적이지만, 소리도 진동도 요란하지 않게 속도를 끌어올린다. 대형 SUV에서 흔히 느껴지는 출발 직후의 굼뜸이나 터보 특유의 반박자 늦는 반응(터보랙)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문제는 페달을 끝까지 밟았을 때다. 2톤이 넘는 차체가 몸을 시트에 붙일 만큼 단숨에 튀어나간다. 다만 이 급가속조차 거칠다는 인상보다는 '세련되게 빠르다'는 쪽에 가깝다. 스포츠 모드로 바꾸면 시트 옆면(사이드 볼스터)이 몸을 조여주면서 코너에서도 몸이 흔들리지 않게 잡아준다. 평소엔 편안하다가 필요할 때만 단단해지는 이 온오프 스위치가 제네시스다운 균형 감각으로 읽힌다.
22인치 휠 신고도 안락, 트렁크는 644리터
큼직한 22인치 블랙 휠을 신으면 승차감이 딱딱해질 법도 한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1열은 몸이 시트 안으로 파고드는 듯한 착좌감을 주면서도 포근했고, 2열 역시 쿠페형 루프 때문에 좁을 거란 예상과 달리 무릎 공간이 넉넉했다. 다만 C필러 쪽부터 천장이 낮아지는 구조라 키가 큰 탑승자라면 머리 위 공간이 다소 아쉬울 수 있다.
실용성도 놓치지 않았다. 기본 트렁크 용량은 644리터, 2열을 접으면 1980리터까지 늘어난다. 트렁크 옆 버튼 하나로 2열 등받이를 원터치 폴딩할 수 있어 짐 싣기가 수월하다. 짐을 가려주는 러기지 선반도 검은 스웨이드를 입힌 접이식 구조라, 보이지 않는 공간까지 소재 타협 없이 만들었다는 인상을 준다.
장식을 더하지 않고 검은색 하나로 존재감을 만든 GV80 쿠페 블랙, '빼기의 미학'이 이렇게 강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시승이었다.

